>

원문 : http://headlines.yahoo.co.jp/hl?a=20130410-00000014-spnannex-base

         http://www.sponichi.co.jp/baseball/news/2013/04/10/kiji/K20130410005577300.html

 

PL학원 심각한 집단 괴롭힘…고시엔 예선 출전금지 "자칫하면 사망사고 이어질 뻔"

 

 일본학생야구협회는 9일 도쿄에서 심사실회의를 열어, 봄과 여름 대회를 합쳐 고시엔에서 7번 우승한 PL학원(오사카)에서 벌어진 폭력 사건을 심의하여, 사건 발생 다음날인 2월 24일부터 8월 23일까지 6개월간 대외시합금지처분을 내렸다. 이에 따라 여름 대회 오사카 지역 예선에 출전할 수 없어졌고, 8월에 열릴 고시엔 대회에도 자연스레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2월 23일 오전 10시경, 기숙사 내에서 당시 2학년 선수 4명이 1학년 선수의 배를 무릎으로 심하게 눌러 찍는 등의 폭력을 행사하였고, 경련을 일으킨 1학년 선수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 때문에 이 학교는 춘계 오사카 대회 출전을 자진 포기하였다.

 

 심사실회의에 참여한 일본고교야구연맹의 니시오카 히로타카(西岡宏堂) 심의위원장은 '이번 폭력행위는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심각한 집단 괴롭힘이었다. 자칫하면 사망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였다.'고 설명하였다.

 

 이 학교 야구부에서는 2001년에도 반복적인 폭력사건이 일어나면 6개월간 대회시합금지와 감독과 부장에게는 1년간의 근신 처분을 내렸었다. 현재 이 학교의 감독인 코노 아리미치(河野有道, 64)씨는 12년 전에도 이 학교의 감독이었다. 2001년 당시에 야구부 감독직에서 물러났었 2008년에 복귀하였다. 이 학교는 당시 야구부 기숙사를 폐쇄하고 야구부원은 운동부 전체가 사용하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등 환경개선을 하여 선후배 간의 과도한 상하관계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지만, 다시 한 번 기숙사 내에서 폭력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니시오카 심의위원장도 야구부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다. '과거에도 몇 번 폭력 문제가 일어났었다.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고 단호히 지적하였다.

Posted by gleam☆

원문 : http://zasshi.news.yahoo.co.jp/article?a=20130405-00000304-sportiva-base

 

【고교야구】 안라쿠 토모히로의 772구. 반복되어선 안 될 '17년 전의 비극'

 

 고시엔 역대 최다인 63승을 올린 치벤와카야마(智弁和歌山)의 타카시마 히토시(高嶋仁) 감독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지금까지 제일 후회되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타카시마 감독은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답했다.


 "타카츠카를 망가뜨린 일이지."


 타카츠카란, 1996년 선발 대회에서 준우승했을 당시 2학년 에이스인 타카츠카 노부유키(高塚信幸, 전 킨테츠) 선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첫 시합과 준준결승에서 완봉하는 등, 140km/h대의 속구를 무기로 준결승까지 4시합 모두 완투하여 팀을 결승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타카츠카는 이 대회에서의 연투 탓에 어깨를 다쳐서 팀이 우승했던 이듬해 여름 대회에는 거의 등판하지 못했다.

 

 "두 번째 투수로 쓸 예정이었던 미야자키(宮崎充登, 전 히로시마)가 대회 전에 다친 것도 있었지만, 던지기만 하는 거라면 다른 투수들도 있었어요. 그 선수들이 던지게 했다면……."

 

 타카츠카 이후로, 2학년 투수로서 17년 만에 4시합 연속 완투로 결승에 진출한 것이 사이비 고교(済美高校)의 안라쿠 토모히로(安樂智大)였다. 첫 시합(2회전)인 코료(広陵)전에서 연장 13이닝 동안 232개의 공을 던지고, 3회전 세세코(済々黌)와의 시합에서는 159개, 준준결승인 현립기후상고(県岐阜商)전에서 138개, 준결승인 코치(高知)전에서 134개, 모두 663개의 공을 던져서 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전 뒤,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우승하고 싶다. 매우 두근거린다.'라며 피로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한 말을 남겼지만, 몸은 정직했다. 결승전 전날 밤, 안라쿠는 숙소에서 이런 말을 내뱉었다.

 

 "어깨나 팔꿈치에 당김은 없지만, 하반신이 지쳐 있습니다. 시합이 끝난 뒤 걷는 것도 힘듭니다. 지금도 간신히 서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결승까지 3일 연속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등판하는 날에 하는 사우나와 냉온욕, 트레이너가 해 주는 마사지로도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맞혀 잡는 투구를 이용하여 4회까지 2피안타로 간신히 막았지만, 120km/h대 후반의 직구를 던지는 등 전날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있는 힘껏 팔을 휘둘러도 140km/h대 후반의 구속이 안 나와서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5회, 밋밋해진 변화구가 연타 당하면서 노아웃 주자 2, 3루 상황이 되자 사용할 수 있는 구종이 제한되었다. 그러자 상대 타자들이 이를 노렸고, 한 이닝에 무려 8안타를 허용하였다. 1루수 앞 땅볼 상황에서 베이스커버를 들어가지 못하는 한편, 스파이크 끈이 풀려 있는 것을 유격수 우사가와 리쿠(宇佐川陸)가 발견하여 타임을 부르는 장면도 있었다.

 

 "안라쿠는 끈이 풀려있는지도 몰랐습니다. 평소라면 눈치챘을 것입니다." (우사가와)

 

 베이스커버를 하기 위해 달릴 체력도, 자신의 발을 쳐다볼 여유도 없었다. 분명 한계에 부딪혀 있었다. 하지만 안라쿠는 마운드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한 이닝 동안 7점을 뺏긴 것은 처음'이라는 굴욕을 맛보면서도 죠코 마사노리(上甲正典)감독에게 5회가 끝난 뒤 그만 던지라는 말을 듣자, "한 이닝 더 던지겠습니다."라고 자원하여 6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6회에서도 2점을 더 잃으면서 마운드에서 물러났지만, 이날에도 109개의 공을 던졌다. 5시합 합쳐 772구. 이것은 타카츠카의 712구를 크게 웃도는 숫자였다.

 

 안라쿠는 2학년임에도 내년 드래프트 1순위가 확실한 재목이다. 물론 죠코 감독도 안라쿠의 장래를 생각했다. 추운 겨울, 몸이 충분히 데워지지 않았는데도 수비연습에서 있는 힘껏 공을 던지는 안라쿠에게 '몸을 아껴라. 이러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쩔 거냐.'라며 불같이 호통을 친 일도 있었다.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시합 전날 밤에 결정하는 선발 오더도 준결승 이후부터는 그날 아침 안라쿠에게 몸 상태를 물은 뒤 결정하기로 했다.

 

 안라쿠의 장래와 팀의 승리, 어느 것을 우선할 것인가. 전국 제패를 눈앞에 두고, 감독에게는 매우 힘든 결정이었다. 죠코 감독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고민되죠……. 장래를 생각하면 무리시킬 수 없죠. '어때?'하고 물어봐도 본인은 '아무렇지 않습니다. 던지겠습니다.'라고 말해요. 말려야 하기 때문에 어렵죠."

 

 덧붙여, 2004년 선발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에도 에이스는 2학년 후쿠이 유야(福井優也, 히로시마)였다. 후쿠이는 준준결승인 토호쿠(東北)전 9이닝을 제외하고 5시합 44이닝을 혼자서 던졌고, 준우승한 같은 해의 여름 대회에서도 결승전에서 1.2이닝 만에 마운드에서 내려온 것 말고는 혼자서 다 던졌다. 그런데도 후쿠이는 다치지 않았고, 다음 해의 여름 대회에도 출전했다. 왜, 후쿠이는 그만큼 던졌는데도 다치지 않았던 것일까? 죠코 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팀은 부상에 대해서 스스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아프다고 해도 나는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 예를 들면, 5 정도의 통증을 10 정도로 이야기하는 타입의 선수도 있고, 반대로 10 정도의 통증을 5 정도라고 이야기하는 타입도 있습니다. 물론 부상을 숨기는 선수도 있습니다. 매일 보는 중에도 계속 확인해 주어야만 합니다."

 

 아마 후쿠이는 전자였을 것이다. 여기에 죠코 감독이 계속 지켜본 점도 있었기 때문에 다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치에서 나고 쑥쑥 자라난, 성실한 성격의 안라쿠는 아마 후자일 것이다.
 

 "안라쿠는 10을 5로 말하는 타입입니다. 그래서 걱정됩니다. 제겐 진짜 속마음을 말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통해서 속마음을 들으려는 일도 있습니다."

 

 마치 그러한 성격을 드러내기라도 하는 듯, 안라쿠는 결승전 뒤 이렇게 말했다.

 

 "'잘했다'는 얘기를 듣지만 마지막까지 마운드를 지키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3일 동안 착실히 던지지 못한 자신에게 한심함을 느꼈습니다. 너무 많이 던졌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것은 관계없습니다. 오히려 고시엔에서 많이 던지게 되어 기뻤습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투구 수를 줄이기 위해서 변화구를 습득할 것 마지막에 퍼지고 말았던 하반신을 강화할 것을 스스로 과제거리로 들었다. 앞으로 안라쿠는 눈앞에서 놓친 전국 제패를 달성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연습하도록 스스로 채찍질을 할 것이다. 던지는 데 필요한 체력을 만들기 위해 지금보다 더욱 많은 공을 던져댈지도 모른다. 죠코 감독이 괜찮으냐고 묻는다면 분명히 "괜찮습니다."하고 마운드에 오를 것이다.

 

 그래서 죠코 감독을 필두로 하는 지도자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제하는 것은 본인이 해야 할 일이지만, 만약 본인이 던지고 싶다고 해도 완벽한 몸 상태가 아니라면 던지게 해선 안 된다.

 

 2학년임에도 152km/h를 기록하는 등 이번 대회에서 활약한 안라쿠를 지켜본 스카우트 모두가 '올해 드래프트에서도 1순위'라고 단언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의 입에서 오자키 유키오(尾崎行雄, 전 토에이), 에가와 스구루(江川卓, 전 요미우리), 이라부 히데키(伊良部秀輝, 전 한신) 등 지난날의 강속구 투수들의 이름이 나오면서 이 정도의 클래스가 될 재목이라고 단언했다.

 

 장래에 일본 야구계를 짊어질 가능성을 품은 안라쿠. 이전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도 이 16살의 재목을 야구계 전체가 지켜나가야만 한다. 이번 안라쿠의 역투가 그러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

田尻賢誉●文 text by Tajiri Masataka

Posted by gleam☆

원문 : http://headlines.yahoo.co.jp/hl?a=20130403-00000005-jct-ent&p=1

         http://www.j-cast.com/2013/04/03172359.html?p=all

 

사이비 고교 '에이스의 5연투'에 이의 … 투수 생명 끝날 위험 있어

 

甲子園は球児にとって夢の舞台

고시엔은 야구 소년들에겐 꿈의 무대.

 

 고시엔 구장에서 연일 열전이 계속된 '봄의 선발고교야구대회'는 4월 3일에 열린 결승전에서 우라와 학원(浦和学院, 사이타마 현)이 사이비(済美, 에히메 현)를 17-1로 누르고 첫 우승을 달성하였다. 결승까지 4시합 연속으로 완투한 사이비의 안라쿠 토모히로(安楽智大) 투수는 마지막 시합에서 힘을 다하였다.

 

 팀을 짊어진 한 명의 에이스가 계속된 연투로 몇백 개의 공을 던졌다. 이렇게 무리하기를 강요한다면 투수생명을 잃을 위험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 초고교급 에이스가 결승에서 두들겨 맞다.

 

 '오늘은 직구로 승부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변화구를 많이 던졌습니다. 타선을 막지 못한 것은 저의 힘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우라와 학원에 패배한 사이비의 안라쿠 투수는 시합 뒤, 얼굴에서 아쉬움이 묻어났다. 첫 시합부터 4시합, 총 663구를 던진 끝에 오른 결승 무대. 4회까지는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5회에 무너졌다. 5타자 연속 안타를 포함, 타자일순하는 맹공을 받으며 7실점 하였다. 6회에도 계속 던졌지만, 추가로 2실점 하였다. 그렇게 109개의 공을 던진 뒤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프로가 주목하는 초고교급 에이스가 이렇게까지 두들겨 맞은 것은 아마 처음일 것이다.

 

 한 명의 투수가 매 시합, 연투도 마다치 않고 던지는 기용법에 대해 반론이 나왔다. 미국 CBS 스포츠 인터넷판에서는 3월 30일 기사에서 안라쿠 투수를 소개하였다. 첫 시합에서 연장 13회, 232구를 던진 뒤 3일 뒤에 159구 완투를 한 것에 대해 '투수에게 좋지 않고, 가혹한 부담이다. 성장 도중인 16의 나이라면 더욱 그렇다.'라고 지적하였다.

 

 스포츠 기자 경험이 있는 오토타케 히로타다(乙武洋匡)씨는 트위터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고등학교 2학년 나이에 많은 공을 던지게 한 것에 의문을 가짐과 동시에, '에이스의 역투'등의 그럴싸한 말로 보도하기만 하고 문제 제기를 게을리 한 스포츠 언론의 자세나 투구 수 제한 도입을 검토하지 않는 일본고교야구연맹에도 쓴소리를 하였다. 이러한 내용의 트윗들에 메이저 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의 다르빗슈 유 투수도 반응하였다. 오토타케에게 '출장선수등록을 25명으로 하고, 학년별로 투구 수를 제한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였다. 한편, 선수들 모두가 프로로 진출하는 것도 아니고, 무리해서라도 고시엔에서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어하는 선수도 있기 때문에 투구 수 제한을 두면 안 된다고 오토타케에게 반론하는 사람도 있었다.

 

 야구 평론가 에모토 타케노리(江本孟紀)씨는 CBS 스포츠 기사를 비판하였다. 4월 2일, 자신의 블로그에 '연투를 할 수 있는 타고난 어깨를 가진 경우가 있다. 그리고 부상을 잘 당하지 않는 좋은 폼이 있다. 이 폼을 만드는 연습방법 등에 따라서 강인한 다리, 허리, 어깨가 만들어진다. 마지막으로 손목의 힘과 악력이 연투의 원천이다.'라고 설명하며, 안라쿠 투수가 이 경우에 들어맞는다고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안라쿠 투수와 같이 던지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어깨와 팔꿈치 등지에 부상을 당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승리라는 대가를 얻기 위해 감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안 된다, 이래라저래라 하고 말하면 안 된다.'라고 주장하였다.

 

- 한 투수에게 모든 시합을 맡기지 말고, 여러 명의 투수를 준비해야

 

 고시엔의 모든 시합에 출전하여 팔꿈치를 다쳐 투수 생명이 끝난 경우가 있다. 1991년 여름에 열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한 오키나와수산고등학교의 오노 린(大野倫) 투수가 그 예이다. 1회전부터 5시합 전부 완투를 했지만, 이미 지방대회에서 통증을 느낀 오른 팔꿈치의 상태는 더욱 악화하였다. '오키나와 현 최초의 여름대회 우승'의 기대가 높아진 와중에 결승인 오사카토인(大阪桐蔭)전에도 등판했지만, 이미 팔꿈치는 한계에 달해 있었고, 13실점을 하며 패배하였다. 총 6시합, 773개의 공을 던진 오노 투수는 고시엔이 마지막 마운드가 되고 말았다.

 

 이후 TV 인터뷰에서, 결승전 등판을 '감독과 나의 신뢰관계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오노 투수의 경우, 대학 진학 뒤에 타격 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지명될 정도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고교 시절에 투수로서의 길이 막힌 것은 비극이었다.

 

 초, 중학교 선수 지도 경험이 있는 스포츠 저널리스트 스가야 히토시(菅谷齊)씨는, 한 명의 투수에게 모든 시합을 맡기지 말고 '2, 3명의 투수를 준비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고시엔에 나오는 높은 수준의 투수는 연습때 이미 많은 투구를 하므로 체력 부분은 걱정하지 않는다. 그래도 단 1명이 계속해서 무거운 부담감을 강요받는다면, 어깨나 팔꿈치가 망가질 염려가 있다.

 

 학생야구에서는 선수들의 목표를 '고시엔 출장'으로 못 박는다. 그 꿈이 실현되면 '팔이 부러진다 해도 던지고 싶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특히 안라쿠 투수와 같이 프로 선수로 촉망받는 인재에게는, 지도자의 판단력이 요구된다. 스가야씨는 육성을 우선하고, 부상을 입을 정도로 무리시키지 않아야 하므로 전력 면에서 여러 명의 투수를 키울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대회 일정 부분에도 제안한다. 이번 대회의 준준결승은 3월 31일과 4월 1일 이틀로 나뉘어 있었지만, 사이비는 4월 1일의 두 번째 시합에 편성되었기 때문에 결승까지 3연전을 치러야만 했다. 공정성 면에서도, '준준결승은 하루로 끝내고, 준결승과 결승 사이에 하루의 휴식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시엔 무대 위에서는 '승리지상주의'를 가질 수밖에 없다. 후원자나 고향에서의 기대도 커진다. 그래도, 스가야 씨는 선수 육성에 뛰어난 감독이라면 '눈앞의 1승'보다 선수의 장래를 가장 우선시했으면 한다고 하였다.

Posted by gl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