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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zasshi.news.yahoo.co.jp/article?a=20130405-00000304-sportiva-base

 

【고교야구】 안라쿠 토모히로의 772구. 반복되어선 안 될 '17년 전의 비극'

 

 고시엔 역대 최다인 63승을 올린 치벤와카야마(智弁和歌山)의 타카시마 히토시(高嶋仁) 감독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지금까지 제일 후회되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타카시마 감독은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답했다.


 "타카츠카를 망가뜨린 일이지."


 타카츠카란, 1996년 선발 대회에서 준우승했을 당시 2학년 에이스인 타카츠카 노부유키(高塚信幸, 전 킨테츠) 선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첫 시합과 준준결승에서 완봉하는 등, 140km/h대의 속구를 무기로 준결승까지 4시합 모두 완투하여 팀을 결승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타카츠카는 이 대회에서의 연투 탓에 어깨를 다쳐서 팀이 우승했던 이듬해 여름 대회에는 거의 등판하지 못했다.

 

 "두 번째 투수로 쓸 예정이었던 미야자키(宮崎充登, 전 히로시마)가 대회 전에 다친 것도 있었지만, 던지기만 하는 거라면 다른 투수들도 있었어요. 그 선수들이 던지게 했다면……."

 

 타카츠카 이후로, 2학년 투수로서 17년 만에 4시합 연속 완투로 결승에 진출한 것이 사이비 고교(済美高校)의 안라쿠 토모히로(安樂智大)였다. 첫 시합(2회전)인 코료(広陵)전에서 연장 13이닝 동안 232개의 공을 던지고, 3회전 세세코(済々黌)와의 시합에서는 159개, 준준결승인 현립기후상고(県岐阜商)전에서 138개, 준결승인 코치(高知)전에서 134개, 모두 663개의 공을 던져서 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전 뒤,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우승하고 싶다. 매우 두근거린다.'라며 피로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한 말을 남겼지만, 몸은 정직했다. 결승전 전날 밤, 안라쿠는 숙소에서 이런 말을 내뱉었다.

 

 "어깨나 팔꿈치에 당김은 없지만, 하반신이 지쳐 있습니다. 시합이 끝난 뒤 걷는 것도 힘듭니다. 지금도 간신히 서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결승까지 3일 연속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등판하는 날에 하는 사우나와 냉온욕, 트레이너가 해 주는 마사지로도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맞혀 잡는 투구를 이용하여 4회까지 2피안타로 간신히 막았지만, 120km/h대 후반의 직구를 던지는 등 전날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있는 힘껏 팔을 휘둘러도 140km/h대 후반의 구속이 안 나와서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5회, 밋밋해진 변화구가 연타 당하면서 노아웃 주자 2, 3루 상황이 되자 사용할 수 있는 구종이 제한되었다. 그러자 상대 타자들이 이를 노렸고, 한 이닝에 무려 8안타를 허용하였다. 1루수 앞 땅볼 상황에서 베이스커버를 들어가지 못하는 한편, 스파이크 끈이 풀려 있는 것을 유격수 우사가와 리쿠(宇佐川陸)가 발견하여 타임을 부르는 장면도 있었다.

 

 "안라쿠는 끈이 풀려있는지도 몰랐습니다. 평소라면 눈치챘을 것입니다." (우사가와)

 

 베이스커버를 하기 위해 달릴 체력도, 자신의 발을 쳐다볼 여유도 없었다. 분명 한계에 부딪혀 있었다. 하지만 안라쿠는 마운드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한 이닝 동안 7점을 뺏긴 것은 처음'이라는 굴욕을 맛보면서도 죠코 마사노리(上甲正典)감독에게 5회가 끝난 뒤 그만 던지라는 말을 듣자, "한 이닝 더 던지겠습니다."라고 자원하여 6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6회에서도 2점을 더 잃으면서 마운드에서 물러났지만, 이날에도 109개의 공을 던졌다. 5시합 합쳐 772구. 이것은 타카츠카의 712구를 크게 웃도는 숫자였다.

 

 안라쿠는 2학년임에도 내년 드래프트 1순위가 확실한 재목이다. 물론 죠코 감독도 안라쿠의 장래를 생각했다. 추운 겨울, 몸이 충분히 데워지지 않았는데도 수비연습에서 있는 힘껏 공을 던지는 안라쿠에게 '몸을 아껴라. 이러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쩔 거냐.'라며 불같이 호통을 친 일도 있었다.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시합 전날 밤에 결정하는 선발 오더도 준결승 이후부터는 그날 아침 안라쿠에게 몸 상태를 물은 뒤 결정하기로 했다.

 

 안라쿠의 장래와 팀의 승리, 어느 것을 우선할 것인가. 전국 제패를 눈앞에 두고, 감독에게는 매우 힘든 결정이었다. 죠코 감독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고민되죠……. 장래를 생각하면 무리시킬 수 없죠. '어때?'하고 물어봐도 본인은 '아무렇지 않습니다. 던지겠습니다.'라고 말해요. 말려야 하기 때문에 어렵죠."

 

 덧붙여, 2004년 선발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에도 에이스는 2학년 후쿠이 유야(福井優也, 히로시마)였다. 후쿠이는 준준결승인 토호쿠(東北)전 9이닝을 제외하고 5시합 44이닝을 혼자서 던졌고, 준우승한 같은 해의 여름 대회에서도 결승전에서 1.2이닝 만에 마운드에서 내려온 것 말고는 혼자서 다 던졌다. 그런데도 후쿠이는 다치지 않았고, 다음 해의 여름 대회에도 출전했다. 왜, 후쿠이는 그만큼 던졌는데도 다치지 않았던 것일까? 죠코 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팀은 부상에 대해서 스스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아프다고 해도 나는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 예를 들면, 5 정도의 통증을 10 정도로 이야기하는 타입의 선수도 있고, 반대로 10 정도의 통증을 5 정도라고 이야기하는 타입도 있습니다. 물론 부상을 숨기는 선수도 있습니다. 매일 보는 중에도 계속 확인해 주어야만 합니다."

 

 아마 후쿠이는 전자였을 것이다. 여기에 죠코 감독이 계속 지켜본 점도 있었기 때문에 다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치에서 나고 쑥쑥 자라난, 성실한 성격의 안라쿠는 아마 후자일 것이다.
 

 "안라쿠는 10을 5로 말하는 타입입니다. 그래서 걱정됩니다. 제겐 진짜 속마음을 말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통해서 속마음을 들으려는 일도 있습니다."

 

 마치 그러한 성격을 드러내기라도 하는 듯, 안라쿠는 결승전 뒤 이렇게 말했다.

 

 "'잘했다'는 얘기를 듣지만 마지막까지 마운드를 지키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3일 동안 착실히 던지지 못한 자신에게 한심함을 느꼈습니다. 너무 많이 던졌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것은 관계없습니다. 오히려 고시엔에서 많이 던지게 되어 기뻤습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투구 수를 줄이기 위해서 변화구를 습득할 것 마지막에 퍼지고 말았던 하반신을 강화할 것을 스스로 과제거리로 들었다. 앞으로 안라쿠는 눈앞에서 놓친 전국 제패를 달성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연습하도록 스스로 채찍질을 할 것이다. 던지는 데 필요한 체력을 만들기 위해 지금보다 더욱 많은 공을 던져댈지도 모른다. 죠코 감독이 괜찮으냐고 묻는다면 분명히 "괜찮습니다."하고 마운드에 오를 것이다.

 

 그래서 죠코 감독을 필두로 하는 지도자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제하는 것은 본인이 해야 할 일이지만, 만약 본인이 던지고 싶다고 해도 완벽한 몸 상태가 아니라면 던지게 해선 안 된다.

 

 2학년임에도 152km/h를 기록하는 등 이번 대회에서 활약한 안라쿠를 지켜본 스카우트 모두가 '올해 드래프트에서도 1순위'라고 단언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의 입에서 오자키 유키오(尾崎行雄, 전 토에이), 에가와 스구루(江川卓, 전 요미우리), 이라부 히데키(伊良部秀輝, 전 한신) 등 지난날의 강속구 투수들의 이름이 나오면서 이 정도의 클래스가 될 재목이라고 단언했다.

 

 장래에 일본 야구계를 짊어질 가능성을 품은 안라쿠. 이전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도 이 16살의 재목을 야구계 전체가 지켜나가야만 한다. 이번 안라쿠의 역투가 그러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

田尻賢誉●文 text by Tajiri Masa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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